사담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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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지금 이 감정과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작성을 하려 한다.
22년 2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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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시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얼마 남지 않으셨다.
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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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가 21년 12월쯤 뇌졸중으로 가톨릭대 성모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글을 작성하는 220205(토)까지 아직은 병원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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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집에 가고 싶다고 연거푸 말씀하셨다.
얼마나 집에 가고 싶으실까?
계속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다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자식들은 퇴원시키지 않고 치료를 선택했다.
이게 정말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 반드시 남기고 싶은 생각이 있다.
연로하신 상태에서는 다른 치료를 하기보다는 응급 수술만 하고 퇴원을 시켜라.
병원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으면서 오히려 기력이 쇠하고 안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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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연세가 있으셔서 힘이 없으신데
괜히 검사하고 치료하고 병원에 입원하느라
잘 못 먹고 오히려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진다.
이 부분에 대해 엄마는 굉장히 후회하신다.
막상 닥치면 그런 선택을 내리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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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없던 병이 갑자기 생기시고
90세에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면서
연하 장애로 인해 콧줄과 산소 호흡기를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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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의식이 없으신 건 아니다.
정신은 분명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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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이라 면회가 일절 금지라
핸드폰 영상 통화를 하는데 분명 말을 다 알아들으신다.
다만 힘이 없으셔서 말을 잘 못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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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장면을 엄마가 보는 게 너무 슬프다.
정말로 너무 슬프다.
자신의 부모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런 모습을 지켜본다는 게 너무 잔인하다.
22년 12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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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전화했고
자식들은 바로 외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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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셨다.
다만 말이 좀 어눌하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와 우리 집은 가까워서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셔와서
30~40분 재우셨다.
그러다 문득 예상치 못한 질병이 있고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곧장 병원으로 가셨다.
2202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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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면담을 하였다.
“더이상의 치료보다는 편하게 보내드리자고”
그래서 엄마와 외삼촌들은 이야기를 나눴고
의사와 이야기해서
외할아버지가 그토록 원하시던 집으로
단 며칠 만이라도 외할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싶다 했다.
의사도 어렵게 동의를 하였다.
그게 220203(목)일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220205(토)일에 집에 간다고
딱 두 밤만 지나고 집에 가자고 했고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이 커지면서 좋아하셨다.
2202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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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주치의가 호출했다.
엄마는 면담하고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해줬다.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내일 퇴원이 힘들 거 같다.
대신 1인실로 모셔서 가족 면회를 하고
그 다음에 호스피스로 가는 거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220204(금) 1인실로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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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자리에 나는 없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엄마와 외삼촌들은 어땠을까?
단 며칠 만이라도 집에 모시고 싶고
그게 딱 하루가 남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외할아버지가 그토록 염원하셨던 집에 가는 걸 해드리지 못했다는 평생 한이 되진 않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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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위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런데 가족 앞이라 편하게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애써 참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
언젠간은 내 앞에 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내가 되지 않을까?
내 입으로 부모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엄마가 “우리 아빠”라는 단어를 꺼내면서 벅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모습이 눈에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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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엄마에게 외할아버지 집이 가까우니
가서 편하게 우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은 외할아버지 집에 가는 게 무섭다고 하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그치만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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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혹시 외할아버지 면회 가서 사진 찍을래?”
“응” 이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말을 바꾸셨다.
“아니… 사진 보면 슬플 거 같아”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그런 사진을 남기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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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실로 옮긴 후 면회가 가능하다.
단 1명씩만 들어갈 수 있다.
혼자 들어가서 외할아버지에게 무슨 말은 해야 할까?
잘못해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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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식들이 들어가면 어떨까?
과연 부모 앞에서 눈물을 안 흘릴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렇지 못할 거 같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올 거 같다.
그리고 엄마가 하염없이 우는 모습이 상상이 가서 더 슬프다.
하지만 오히려 단둘이 있을 때 우는 게 더 후련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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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었고 나는 싱숭생숭해서 잠이 들지 못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보니 잘 주무시고 계신다.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나 같으면 시간이 안 가길 기도할 거 같다.
눈을 감고 뜨면 아침이 되고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건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게 싫다.
2202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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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면회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면회를 했다.
다행히도 면회하는 사람마다 할아버지 컨디션이 좋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엄마는 상주로 대기를 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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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상주하기 위해 어제 PCR 검사를 받았고
음성 문자만을 기다리는데 PCR 문자 시스템이 고장이 나서
문자를 받지 못한 상태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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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에 오기 전에 할아버지 집에 들러 짐 정리를 하였다.
옷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집의 가구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자꾸만 엄마는 어떤 심정일까?
나도 언젠간 이렇게 내 부모님의 짐을 정리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단 짐 정리를 하고 집으로 왔는데
엄마가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이랑 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혼자서는 못할 거고 돌아가신 후 정리를 하면 더 슬플 거 같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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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에 왔는데
엄마가 몸이 으스스 몸살 기운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볼 땐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다가
다행히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억눌렸던 긴장이 내려가면서 몸살 기운까지 온 듯싶다.
나 또한 면접 같은 걸 보고 나면 갑자기 몸살 기운이 있던 경험을 떠올려보니 맞지 않나 싶다.
그래서 엄마를 편하게 장판에서 몇 시간 주무시게 하였는데 다행히도 괜찮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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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푹 쉬다가 저녁을 먹고 병원을 같이 갔다.
나는 면회를 하러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병원 규칙이 자꾸 바뀌고
간호사마다 자꾸 바뀌다 보니까 저녁에 면회를 못할 뻔 했다.
그래도 다행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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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를 드디어 만나 뵈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신은 멀쩡하셨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다 들리고 다 이해하시죠?” 라고 여쭸는데 “응”이라고 대답하셨다.
다만 말씀하시는 게 힘들어서 대화가 어려웠다.
또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혀가 완전 말라 있었다.
아무래도 식사도 콧줄로 하시다 보니 혀에 물이 닿을 기회가 없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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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가량 면회를 하면서
사랑한다구 이야기도 하고
얼굴을 쓰담어 주시기도 하고
힘겹게 대화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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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 게
어차피 다 들으시고 손가락도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한글 자음 모음표를 보여주고
가리키게 하는 게 편하겠단 생각이 들어서
할아버지와 해봤는데 할아버지가 잘 가리키셨다.
다만 시력이 안 좋으셔서 안경이 필요하다 하여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 집을 들러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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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15분 면회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분명 15분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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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면회 때 간호사분께서
할아버지가 통화하고 싶어하시는데
핸드폰 연락처에 아무것도 저장되어있지 않다고 하여 보니 정말 아무도 저장이 안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고 나와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는데
1번 꾹 누르면 전화가 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할아버지 핸드폰을 받아서 설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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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문자를 받으면 너무 행복해하지 않을까?
가끔 슬픈 영상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문자나 연락을 너무 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딸 사랑해”, “딸 때문에 행복해” 라는 문자를
할아버지 핸드폰에서 엄마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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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시진 않았다.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엄마한테
“혹시 아들이 하부지 핸폰으로 나한테 문자보냇니?” 라고 카톡이 왔다.
“하부지한테 한글 보여주면서 엄마한테 하고픈말 하라했어” 라고 착한 거짓말을 하였다.
뭔가 찝찝하여 내일 하부지 면회를 가게 되면 하부지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낼까요? 라고
의사를 물을 예정이다.
비록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하부지의 마음이 전달되고
그로인해 엄마도 행복하고 기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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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지금 혼자서 하부지 옆에서 간호를 하고 계신다.
차마 어떤 심정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무섭고 불안한데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안 되고 너무 많은 것을 힘들게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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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지가 이제 1인실에서 얼마나 지낼지 모른다.
사전에 이야기된 건 가족들 면회를 하고 나면 호스피스로 이동하는 거였는데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이제 호스피스로 가게 되면 면회가 안된다.
이 또한 코로나 때문에 안된다.
그러므로 호스피스로 보낸다는 건
이제 죽어서 다시 볼 수 있다는 뜻인데
과연 자식들이 이걸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1인실 비용이 하루에 37만 원이라
그게 부담스러워서 그렇겠지만
엄마를 위해서라도 내가 부담을 해서 1인실에 계속 모시고 싶다.
이럴때 쓰라고 돈을 버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자신의 부모님을 옆에 두고 싶어하는 엄마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게 하고 싶단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호스피스로 보낸 후 엄마가 너무 슬퍼할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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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떨어져 집에 오니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내가 어릴 때 못되게 군 것들에 대한 후회들이 몰려왔다.
그래서 솔직하게 엄마에게 다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추억이 너무 없고
사진 또한 너무 없어서 많은 것들을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일이 다 지나고 나면 가족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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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하부지를 간호하면서
하나도 더럽지 않고 애기 같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부모님의 사랑과 관련된 이미지를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다 큰 자식이 부모님에게 무언갈 가르치면서 화를 내는 사진이 있고
그 옆에는 자식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행복하게 가르쳐주는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글귀로 “부모님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그들은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해줬습니다.”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부모님의 사랑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2202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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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1시간 50분 동안 코로나 검사를 위해 줄을 섰다.
결과는 당연히 음성이 나왔고
그 길로 바로 하부지 면회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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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지는 어제보다 안색이 훨씬 좋으셨다.
아무래도 엄마가 옆에서 간호하니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엄마의 컨디션도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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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웃으셨다.
그런데 그 웃음이 어린아이의 웃음 같았다.
그리고 갈증이 나는지 자꾸 물을 달라 하였다.
사실 물을 주면 폐로 물이 차기 때문에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안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드리는데 자꾸 더 달라고 하시더라.
면회를 하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더 애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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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면회의 가장 큰 목표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일전에 엄마는 하부지와 사진을 남기는 걸 무서워하신다고 적었다.
하지만 지금 하부지의 살아생전을 담지 못하면
앞으로 평생 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하부지와 엄마의 영상을 찍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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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부지의 오랫동안 자르지 않은 수염을 면도해드렸다.
그 과정 일부를 영상으로 남겼다.
그 외의 다양한 영상들을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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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지는 어제보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으셨다.
일단 안색부터가 굉장히 좋으셨다.
그리고 말도 더 잘하셨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아마 탈 없이 치료를 받고 퇴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란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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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같이 면회를 하는데 간호사분께서 들어오셨다.
그 자리에서 엄마는 호스피스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하셨다.
너무나도 신기했다.
나에게 “호스피스”란 정말 이별을 고하는 장소라는 생각에 감히 입 밖으로 못 꺼낼 거 같은데
엄마는 그 단어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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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질문에 간호사분께서는 거기가 중환자실보다 더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또한 상주분이 옆에서 임종을 지켜볼 수 있다고도 덧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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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스피스는 상주 또한 면회가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호스피스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식이라면 보내기 싫을 거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고 싶다고 갈 수도 없고
병상이 생겨야 갈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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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차라리 1인실에서 편하게 눈을 감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게 모든 가족과 면회를 하시구
자식들 마읃모 편하게 모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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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엔 영상 찍기를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찍은 게 너무 좋다.
그런데 자꾸 엄마가 나중에 이런 기록을 보고 슬퍼할 모습이 그려져서
괜한 아픔을 주는 건 아닐까? 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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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지 다리가 퉁퉁 부으셨다.
엄마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천천히 올라오고
그렇게 가는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보니
본인도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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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하부지가 자꾸 어린아이 같다고 이야기하신다.
난 그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
정말 정정하시던 하부지가 아이 같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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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하부지 집에 갔을 때
바지 하나하나 다림질에 옷정리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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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도 자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지키시는데
그 순간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그 순간순간 엄마는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테고
뇌리에 강력하게 박힐 것이다.
한동안은 그로 인해 슬픔에 빠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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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8 (화)에 막내 외삼촌 가족이 면회를 오기로 했다.
할아버지도 그걸 아시니 아마 화요일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가 진짜 고비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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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기 전에 자식과 손자 손녀를 기다리다
다 보고 간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도 그렇지 않을까? 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도 그걸 알고 계실 거라 무섭고 두려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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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생각을 나는 잊고 싶지 않다.
우리 부모님도 언젠간 죽는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많은 추억과 효도를 하자.
연락을 자주 드리자.
특히 엄마는 나와 연락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까칠하게 대해서 쉽게 못 한다.
나부터 변하려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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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이 하부지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과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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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정말 자식 하나 바라보고 사신다.
내가 더 따듯하게 해주고 싶다.
이젠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강한 사람이 약해질까 봐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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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에 대해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민다.
그런데 그건 매우 잘못된 접근이다.
내가 나서서 도와주는 태도를 갖자.
2202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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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날 작성하지 못하고 5일뒤에 작성하려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을 마무리 짓고 싶어 간략하게나마 몇 글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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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지는 1인실에서 기다리던 남은 가족들과 면회를 하였다.
2202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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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실에서 호스피스로 옮기셨다.
옮기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고
호스피스로 들어가는 마지막까지 나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모습이였다.
2202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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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할아버지의 혈압이 떨어지면서
호스피스 내 1인실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 뜻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래서 병원에서 외삼촌들을 급하게 불렀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방호복을 입고 돌아가면서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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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2202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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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눈을 감으셨다.
코로나 때문에 상주 역할 및 이후 장례식에 관한 사항까지
온전히 엄마가 혼자서 다 하셨다.
너무나도 고생하셨고 멋있고 끝까지 옆에서 임종을 지켰다는 게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220211 (금) ~ 2202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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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잘 치르고
발인까지 잘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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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는 매우 복이 많고
정말 좋으신 분이셨다.
많은 걸 느끼고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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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족이 너무 수고했고 다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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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작성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럴 땐 울고 다시 글을 작성하였다.
오히려 울고 나니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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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컨디션에 따라 엄마의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어린 자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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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가 정말 눈을 감으시고
집에 짐을 정리하러 갈 때 또 한 번 울음이 터질 거 같다.
짐 정리를 하는 엄마의 눈물을 보고 울음이 터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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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엄마이지만 누군가의 딸이다.
그 누구보다 강한 엄마이지만 오늘따라 너무 연약해 보이는 소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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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외할아버지가 입원하시고 갑자기 어느 날 완전히 정상인처럼 통화하셨다.
그 때 집에서 씻고 있었는데
엄마는 너무 기뻐하셔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하셨다.
머릿속에 있는 그 모습이 언젠간 희미해지겠지만
엄마가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글로 기록을 해둔다.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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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한테 짜증내고 화내지 말자.
그리고 정말 잘하자 !